다이어리

김소월의 시

동편 2007. 11. 4. 16:36

단장(斷章) (1)

 

하늘도 밝다! 참 밝기는 하고나

그러나, 내, 하늘 치어다 안 보겠네,

그 하늘 못났네,

나보다도 못났네,

잘난 하늘 있는가? 잘난 사람 있는가?

 

그 사람 마음, 나 모르노라,

다른 이의 마음은 다 알아도.

저도 그러리라, 이 마음을 제 어찌 알랴.

 

속았다, 속았다, 나 속았다,

그 사람 날 바리고 갔네.

이렇게 속을 줄이야 내 몰랐다,

그 사람, 왜, 날 바리고 갔나?

나, 못났네, 나 모르겠네, 참 모르겠네.

 

그 사람, 내 말 듣고 세 번 왔네. 꼭 세 번 왔네.

세 번씩은 왔었더라도 말 한마디는 못하여 봤네,

남 알리지 못할 말이라니, 맘으로 고이 싸서 가슴 속에 두고 알자.

 

엘화! 이곳, 산(山)에는 수풀 있고, 강(江)장변에 갈밭 있네.

이 달 스무날 달 뜨거든, 어스름달 되어 주소,

수풀도 좋고, 갈밭도 좋네, 하지마는

그 사람, 내 말을 또 한 번 더 들어 줄런가? 아니 들어,

 

“왔소, 왔소, 편지 왔소,

간밤에 꿈 좋더니 님에게서 편지 왔소.”

그렇소, 바로말로 아는 이 있어 편지라도 오고 가면

사막(沙漠) 같은 이 세상 괴로움도 간혹 잊고 살음직한 때도 있을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