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겸손하게

동편 2010. 10. 2. 07:50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성실’하게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성실’하게

니체는 인간이 신에 이르는 그 지름길을 ‘성실’에서 찾았고,

카뮈는 ‘성실’에다 ‘겸손’을 더했다.

성실하고 겸손하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지만

겸손하지 못하고 성실하게 못 사는 사람이 대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그렇게 뽐낼 존재가 못되기에 겸허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상책이다. 인생은 유한하고 짧다. 쓸모없는 제 자랑 따위를 사람에게 들려줄 여가가 없다. 곰곰이 생각하면 자만할만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백치가 되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은 갑상선에 들어 있는 미세한 양의 옥소 덕택이다. 그만한 옥소쯤 화공약품 가게에 가면 5센트만 주어도 살 수 있다. 갑상선에서 그 옥소를 빼면 인간은 백치가 된다. 겨우 5퍼센트의 옥소로 정신병원에 가지를 않고 있는 주제에 자만해 보았댔자 뻔 한 것이다.“

카네기의 글 한편이다.

오랫동안 삶에 주눅이 들어 살아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인생에 자랑할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그런데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옛말처럼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꿈도 못 꿀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서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대부분의 민중들과는 다른 특수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나고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숙명인데,

나긴 났지만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높은 산에 올라서 산 아래를 굽어보라.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가 살아 있는 인간들인가?

이 세상, 조금만 멀리 바라보면 내세울 것도, 목에 힘을 줄 것도 별로 없다.

왜냐? 우리들 모두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라.”

라고 노래한 구르몽의 시 구절처럼

곧 사라져 갈 운명이니,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성실’하게

그것이 그렇게 어렵다.

경인년 시월 초하루